페리 내항 후 막부에서 다시금 에도만 해방을 명 받은 에가와 타로자에몬 히데타쓰는 간논자키(観音崎) ~ 훗쓰미사키(富津岬)의 방어선과 함께 에도의 마지막 수비로서 시나가와 다이바의 건설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에도만 최초의 인공섬을 만들게 되었다.
카에이 7년(1854)
[자료] 「도쿄만 제3해보 건설사」 그림 – 1.1.2에서 작성
또한 시나가와 다이바의 건설 제안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후 메이지 신정부에 인계 되어, 에도만 연안 포대 건설에 따른 방비 강화와 더 나아가서는 해보 건설로 전개 되어 「도쿄만 요새(東京湾要塞)」의 기초가 형성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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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在残っている品川台場は第三台場と第六台場のみ。第三台場は台場公園の一部となっ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