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해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폭파 파괴로 인해 병사(兵舎)와 엄폐호 등의 벽돌 구조물 및 포대 등의 콘크리트 구조물까지도 완성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 없다. 하지만 일부 벽돌 벽체는 잔존하고 있으므로 벽돌을 쌓는 방법 및 치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특징은 벽돌 쌓는 방법이 영국식 쌓기라는 점과, 기상의 영향을 받기 쉬운 외벽 부분에는 흡수율이 낮은 「야키스기 렌가(焼過煉瓦 : 보통 벽돌보다 고온으로 구운 충격에 강한 벽돌)」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메이지 공업사 화학공업편」은 다음과 같이 기재하여 도쿄만 해보에 코스게(小菅) 벽돌제조소가 제작한 벽돌이 대량으로 사용 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코스게 벽돌 제조소는 메이지 15년(1882), 황거 어조영(皇居御造営)의 납품업자가 되었고, 게다가 육군성(陸軍省)의 포대 건축용으로 그 대부분을 사들인 것 같다」는 기재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이로서 이 시기에 육군이 조달한 벽돌은 모두 코스게 벽돌 제조소의 벽돌인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제2해보에서는 건축용 일반 벽돌(붉은 벽돌)과, 벚꽃 문장(紋章) 각인이 날인 된 14 개(홑꽃잎 양식의 단판(単弁) 10개, 겹꽃잎 양식의 복판(複弁) 4개)의 벽돌이 채집되었다
[※] [참고] 코스게 집치감(集治監)은 현 도쿄도 카츠시카구 코스게 도쿄구치소다. 당시 코스게 벽돌 제조소에서는 관동대지진에 의해 제반 시설이 큰 타격을 받을 때까지 코스게 집치감 죄수노동의 일환으로 벽돌 제조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